33년만에 진실 드러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역대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기록돼 있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춘재 사건)이 1986년 1차 사건 발생 33년 만에 베일을 벗었다.
범인이 이미 사망했거나 수감 중일 것이라는 범죄 심리학자들의 예견처럼,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혀 있던 이춘재(56)는 경찰에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30여년 전 발생한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로 이춘재를 특정했다는 경찰 발표 이후 과학수사의 비약적 발달로 이뤄낸 값진 성과라는 평가가 나왔으나, 수사를 거듭할수록 엉망진창이던 과거 수사기관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을 청구한 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 맞아떨어진 DNA 감정 결과…가석방 희망 사라지자 자백
이춘재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에서 10∼70대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범인으로부터 목이 졸리는 등의 수법으로 살해당한 뒤 옷가지로 손과 발이 묶인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잔혹한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를 남기면서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범죄를 이어갔고, 화성 지역에는 '범인은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노린다'는 등 괴담이 확산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이 사건의 범인은 무려 30년 넘게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우리 기억에서 점차 잊히는 듯했으나, 올해 중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경기남부경찰은 지난 7월 이춘재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여러 DNA를 국과수에 감정 의뢰해, 한 달여 뒤 해당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지난 9월 19일 이춘재 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4월 2일을 기해 만료돼 이춘재에게 죗값을 물을 수는 없지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춘재는 범죄 심리학자들의 예견처럼 또 다른 살인을 저질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는 경찰의 DNA 증거 제시에도 잡아떼기로 일관하다가, 가석방의 희망이 사라지자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그러면서 이미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총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문제는 이 중 범인이 이미 검거돼 처벌까지 끝난 8차 사건이 포함됐다는 점이었다.
◇ 8차 사건·초등생 실종…불법 자행한 경찰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집에서 잠자던 박모(당시 13세) 양이 누군가로부터 성폭행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인근 농기계 수리공장에서 일하던 소아마비 장애인 윤 씨는 이듬해 7월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은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체모 등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하는 기법) 분석을 통해 윤 씨를 범인으로 특정했다고 밝혔다.
과학수사에 근거해 범인을 검거했다는 경찰 발표에 수사 및 사법기관, 언론까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원 또한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이를 증거로 채택, 윤 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윤 씨는 상소하며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판결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20년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된 윤 씨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지난달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윤 씨 측은 당시 국과수의 감정서 오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 데 이어 경찰의 불법체포·감금, 구타·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경찰이) 참 무서운 수사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의 불법 행위는 30년 전 하굣길에 초등학생이 감쪽같이 사라진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에서 정점을 찍었다.
1989년 7월 7일 화성군 태안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김 모(8) 양이 사건 당일 낮 12시 30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실종됐다.
당시 경찰은 같은 해 12월 김 양이 실종 당시 입고 나갔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이 동네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는데도 이를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 김 양의 시신을 은닉한 것으로 최근의 재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춘재는 8차 사건과 초등생 사건 모두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은 8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 참여 경찰관과 검사 등 8명, 초등생 사건 수사 참여 경찰관 2명을 각각 직권남용 및 사체은닉 혐의로 입건했다.
이밖에 당시 경찰의 강압 수사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후유증으로 숨진 여러 사람의 사례들도 재조명되면서 경찰이 수사를 거듭할수록 과거의 과오만 커지는 형국이 됐다.
◇ 국과수 감정, 오류냐 조작이냐…조사놓고 검경 신경전
검찰은 지난 11일 언론 브리핑을 열어 경찰이 수사해 온 이춘재 사건 중 8차 사건에 대한 직접 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경찰 입장에선 수개월째 해온 수사에 검찰이 숟가락을 얹은 셈이 됐다. 더욱이 경찰은 이춘재가 검찰에 의해 부산교도소에서 수원구치소로 이감된 사실조차 모른 채 수원에서 부산까지 헛걸음하는 등 검찰 발표 첫날부터 두 기관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안 등을 놓고 충돌해 온 검·경이 이번에도 갈등을 빚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검찰이 지난 12일 당시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닷새 뒤인 17일 감정서가 조작됐다기보다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 것에 가깝다고 우회적으로 검찰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또 검찰의 직접 조사에서 당시 경찰관들이 윤 씨에 대해 가혹행위를 했다고 시인하고, 수사보고서를 조작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경찰은 당시 담당 검사를 정식으로 형사 입건하는 등 재수사가 상대 기관의 과오를 짚는 성격을 안고 있어 양 기관 사이의 긴장이 지속하고 있다.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검·경이 8차 사건을 두고 수사권 조정 국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검·경 갈등을 뒤로하고, 당시 국과수의 감정 과정에 단순한 오류가 아닌 조작이 있었다는 점이 종국적으로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현대 과학수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과수 감정 결과를 유·무죄 판단의 강력한 근거로 내세워 온 사법체계의 근간까지도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경 모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화성시의회는 지난달 "지역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드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경찰과 언론에 명칭 변경을 요청했다.
이에 연합뉴스는 이달 12일부터 사건명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했으며, 경찰도 17일 이춘재 신상을 공개하면서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바꿨다.